육식하는 기자가 비건뉴스 기사를 기획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비건뉴스를 창간하고 수개월간 기사를 쓰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제까지의 살아온 관성을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치며 비건이 될 자신은 없었다. 길든 식성은 둘째치더라도, 고기를 먹지 않게 됐을 때 내가 마주하고 맞서 싸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는 오랜 기간 취재하면서 동물권 활동가들의 노력과 늘어나는 비건 인구에 세상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 확신하게 됐다.
동물권(動物權, Animal rights)은 동물도 인간처럼 생명권이 있고,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다.
갑자기 비건이 될 수는 없지만, SNS에 고기 사진을 올리지 않는 정도의 자그마한 노력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비건인과 한국채식연합,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관련 단체만큼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는 없어도, 바쁜 나날에 치여 흩어지고 말았을 그들의 말과 글을 모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처럼 최전선에서 투쟁할 용기는 가지지 못해도, 행렬의 맨 끝에서 언론인만의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회를 극적으로 바꿀 힘은 없어도,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의 가치에 100%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작정 비난하지 않고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더 나아가 응원과 격려를 보탤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기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며, 함께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그마한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10명의 비건 지향인들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그래, 나는 덜 완벽한 비건 지향인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