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뉴스=서인홍 기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서울대학교미술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오는 24일까지 개최되는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 전시에서는 13명의 작가가 각자의 해석을 담아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로는 권오상, 김두진, 김상돈, 김현준, 노상균, 민찬욱, 배형경, 신기운, 신미경, 안재홍, 이석주, 전성규, 최수련 작가가 참여한다.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장은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운명과 깊이 연관돼 있으며, 보이는 것의 해석과 판단은 보이지 않는 것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이러한 관계를 탐구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권오상의 '공백' 시리즈는 종교 조각과 종교 건축물을 디지털 포맷으로 샘플링해 해체하는 '공백과 비결정'의 상태를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가치의 무화 상태와 성스러운 공간의 붕괴를 표현하며, 진리와 미적 경험의 재고를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는 진리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자 하는 실험적 예술 행위로, 미술의 행위와 철학적 사유가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모색하며 양자 사이의 공백을 통해 재현 불가능한 진리를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김두진은 고전 명화 속 인물들을 해골 이미지로 변환한 디지털 회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평등과 삶의 보편적 경험을 탐구한다. 작가는 성화에 등장하는 이상화된 신체의 외피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성별, 인종, 시대에 대한 구분이 불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해 낸다. 남아있는 해골은 죽음을 상징하기보다는 모든 살갗이 벗겨진 채 남는 영원한 삶의 몸짓을 드러내며 삶의 에로스적 에너지를 강조하게 되는데, 이로써 작품은 욕망과 평등의 철학적 층위를 시각화해 낸다.
김상돈의 작업은 물질사회의 '시장의 황홀경'을 넘어 원형적 황홀경으로 안내한다. 그의 작품은 혼돈과 질서가 만나는 '카오스모스'적 세계를 표현하며, 전통과 현대, 물질과 정신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을 다룬다. 쇼핑카트와 전통 상여를 결합한 '카트'는 소비사회의 오브제와 주술적 상징을 재배치해 새로운 맥락을 생성한다. 김상돈은 작품을 통해 물질사회의 공허한 '황홀경'과 대조되는 '현실주의적 황홀경'을 제시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한 가능성을 탐구한다.
김현준의 '숨덩어리'는 제주 해안의 시멘트 구조물을 인간의 확장 욕망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이를 바다에서 꺼내기 위해 조각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산소 공급 장치 없이 숨만으로 바다를 오르내리며 조각 작업을 반복하는 이 행위는 자연의 초월적 힘과 인간의 제한된 존재를 동시에 보여준다. 김현준은 이 작업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는 시도의 한계를 몸으로 표현하며, 인간과 자연의 위태로운 관계와 그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노상균의 '축광회화'는 빛을 흡수한 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광하며, 존재와 부재, 시간의 가변성을 드러낸다. 이로써 작품은 순간과 영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영적인 성찰을 유도한다. 더불어 작가의 '시퀸 종교 조각'은 빛과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물질과 비물질, 가시와 비가시의 경계에 선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작품은 감상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적 시공간을 창출하며, 시간에 따른 감각적 변화로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관계를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존재를 탐구하는 민찬욱의 '디지털 휴먼은 무엇인가?'에서 프로그램을 통해 구현된 디지털 휴먼은 물리적 인간과는 달리,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구성된 존재로 인간 정체성의 새로운 층위를 드러낸다. 작품은 디지털 휴먼이 단순한 기술적 산물이 아닌 우리 시대의 철학적 질문과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작가는 현실과 가상 세계가 얽히는 지점에서 현대 사회의 인간성을 어떻게 재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배형경의 은 강철 벽과 성인 크기의 군상으로 인간의 고뇌와 침묵을 표현한다. 작가는 벽을 물리적이자 내적인 장벽으로 해석해 인간이 직면하는 심리적 벽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는 다양한 크기의 인체 조각들을 같은 높이로 배열하는데, 작품은 각기 다른 존재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며 진정한 평등은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가는 물리적 형상과 정신적 깊이를 결합해 인간의 내면적 고뇌와 가치를 탐구한다.
신기운의 '진실에 접근하기'는 사물의 창조 대신 제거와 파괴를 통해 예술의 본질과 존재 방식을 급진적으로 재고한다. '사물의 처형'은 인간의 욕망과 상실, 폭력의 내재적 요소를 드러내며, 예술의 정신적, 물질적 경계를 확장하려는 시도다. 작가는 사물을 갈아 없애는 방식으로 부재를 드러내며, 예술적 창작과 생존의 욕망, 진리와 허위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기운은 예술의 본질을 둘러싼 고정관념에 도전하며 새로운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비누를 사용해 고대 조각상 등의 '문화유산'을 비누로 모사하는 신미경의 '풍화 프로젝트'는 비누라는 재료의 특성상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이 점차 풍화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렇게 풍화된 비누를 다시 브론즈를 떠냄으로써 시간의 변화를 고정하려 시도한다. 이 과정은 자연적인 소멸과 문화적 가치의 변화, 기억의 퇴색 등을 은유하는데,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가 점점 흐려지거나 왜곡되며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안재홍의 회화는 고전주의적 고요함과 엄숙함을 통해 환상적인 종교화나 신화 속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림 속의 개체들은 분리와 분절, 절대성의 파멸과 그 결과로서의 죽음으로 인한 공포를 은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고립되고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유지되는 엄숙함과 고요함은, 우리가 분리된 객체로서 서로 떨어져 나오거나 뒤엉켜 경쟁하면서도 어떠한 예술적 균형, 더 나아가 삶에서 공존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석주는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통해 현실의 진실성을 탐구한다. 그의 회화는 단순한 재현이 아닌 사물의 내러티브와 감춰진 의미를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사유적 공간' 연작은 고전 거장들의 작품을 재구성해 회화적 진실성과 서정성을 표현하고, 현실과 초월이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한다. 작품 속 상징 이미지들은 사유의 공간에서 감상자에게 다양한 내러티브를 제시하며, 작가는 현실의 구체성을 탐구하면서도, 일상의 미학적 가치와 예술적 가능성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전성규의 회화는 양자물리학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카오스적 파동 공간'을 그려낸다. 그의 작품 속 구불구불한 선과 점들은 에너지의 순환과 생명, 그리고 보이지 않는 통로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작가는 물질과 비물질, 유한과 무한이 맞물리는 구성을 통해 존재의 의미와 영적 도약을 탐구한다. 그의 작품은 우주와 인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이를 통한 존재와 영적 도약의 가능성을 탐구며 물질계를 넘어선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사유를 향해 나아간다.
최수련은 동양풍 이미지의 재현과 소비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며, 작품을 통해 전통적 동양의 판타지를 재맥락화한다. 작가는 동북아시아의 신화와 전설, 괴담과 민담을 바탕으로 내면의 정체성과 전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일상적 규범과 정형성을 넘어서는 판타지 세계를 창조한다. 최수련은 전통의 이미지가 현대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나고 소비되는지를 고찰하고, 보이지 않는 문화적 무의식과 전통의 상징적 의미를 드러내며, 관객에게 새로운 감각과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 전시는 관객이 작품을 보고 만지며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는 오는 24일까지 이어지며, 관람객들은 각 작가가 해석한 보이지 않는 것의 세계를 통해 깊이 있는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