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뉴스 권광원 기자] 전 세계에서 비거니즘이 동물권과 환경 보호 등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주목받으면서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0년 글로벌 식물성 식품 시장 규모는 26조4000억 원에 달한다. 5년 사이 35% 이상 성장했다.
국내를 대표하는 식품 기업의 대부분은 식물성 식품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비건 제품은 쏟아지듯 출시되고 있다. 국내는 6000억 원 규모에 머물고 있지만 지난 2년 새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하지만 동물성 단백질 식량난을 해결할 미래 식량이자, 자원 소비와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절감하는 대안으로 손꼽히는 대체 식품이 성장하자 관련 명칭에 대한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축산업계와 낙농업계는 대체 식품에 ‘고기’, ‘육류’, ‘우유’, ‘치즈’와 같은 명칭을 붙이는 것은 엄연한 소비자 인식 왜곡에 해당하며 적절한 명칭을 붙일 것을 촉구했다. 이처럼 축산물 가공업계와 대체육 진출기업 사이에 대체육 ‘고기’ 표기를 놓고 갈등이 불거지자 정부가 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지난 14일 중소기업 옴부즈만은 중소벤처기업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규제 개선 및 애로사항 해결을 위한 ‘에스오에스 토크’에서 최근 수요가 늘고 있는 식물유래 대체 단백질식품(대체육) 관련 표기 방침 등에 대해 가이드라인 제정 방침을 밝혔다. 옴부즈만은 정확한 표시 방법을 통해 소비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식약처에 협의를 요청한 상태다.
이러한 동물성 단백질 업계들의 요구는 대체 식품이 일찍이 발달한 해외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터키는 기존 낙농업계와 식품 업계가 큰 갈등을 빚자 농림부가 나서 비건 치즈 생산과 판매를 아예 금지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해외 비건 푸드 전문지 원그린플래닛(OneGreenPlanet), 식물기반뉴스(Plant Based News) 등에 따르면 최근 터키의 농림부가 터키 식품 규정에 ‘치즈 느낌을 주는 제품은 식물성 기름이나 기타 식품 재료를 사용해 생산할 수 없다’고 명시함으로써 앞으로 비건 치즈 생산과 판매에 빨간불이 켜졌다.
터키의 농림부는 진공 포장이 터키의 전통적인 치즈를 연상케 하고 소비자를 오도하고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비건 치즈를 생산하는 회사에는 벌금이 부과되고 슈퍼와 마트에서 비건 치즈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터키 비건 협회(TVD) 등 식물 기반 커뮤니티, 동물 활동가들은 터키 농림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비건 치즈 생산 및 판매 금지령이 터키 전역의 소비자와 제조업체에 대한 위반이자 권리 상실이라고 주장했다.
터키 비건 협회는 성명을 통해 “규제 조항으로 식물성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시장에서 제품을 철수하는 것은 비건 생활 방식을 채택한 모든 소비자의 식품 접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금지 조치가 소비자 권익 보호 및 변질·기만 방지를 위한 조치로 반영됐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시점에서 건설적인 제안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소비자가 해당 제품에 직접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이는 행정에 의한 기본권과 자유의 자의적이고 불균형적인 제한과 개인의 생활방식에 대한 간섭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비건 치즈 금지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청원을 만들어 진행 중이며 해당 청원은 '#LiftBanOnVeganCheese' 해시태그와 함께 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
식물성 육류 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터키의 비건 치즈 금지령과 유사하게 프랑스는 최근 식물성 브랜드에 ‘스테이크’, ‘소시지’ 등 육류 관련 용어의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들은 “동물계에 속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제품을 지정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육류 및 생선과 관련된 부문별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법안으로 인해 프랑스에 거점을 둔 비건 베이컨 브랜드 라비(La Vie) 등 일부 식물성 육류 판매 업체들은 다른 곳에서 운영할 계획을 밝힌 상태다.
한편 유럽의회에서는 지난해 10월 육류를 함유한 식품에 대해서만 ‘버거’ ‘스테이크’라는 명칭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표결에 부쳐졌지만 부결된 바 있다.
당시 유럽소비자기구(European Consumer Organization)의 식품 정책 책임자인 카미유 페랭(Camille Perrin)은 “소비자들은 콩 스테이크나 병아리콩 소시지가 채식주의자 또는 완전채식으로 명확하게 표시되는 한 혼동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비건 유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미요코 크리머리(Miyoko's Creamery)가 캘리포니아 식품농업부(CDFA)와의 비건 버터와 명칭과 관련된 소송에서 승소했다.
미요코 크리머리의 CEO인 미요코 스키너는 “동물이 아닌 식물로 만든 제품의 맥락에서 ‘우유’ , '버터'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현대 소비자들에게 흔한 말”이라며 “음식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므로 음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언어도 함께 진화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