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앉아 두드리는 키보드부터 커서를 움직이는 마우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감싼 케이스,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온 커피에는 공통점이 있다. ‘플라스틱’을 활용했다는 것. 당장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플라스틱 천지다. 그야말로 ‘플라스틱 시대’다.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석기시대부터 청동기, 철기를 거쳐 플라스틱 시대에 다다랐다.
문제는 플라스틱이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폐기되는 양 자체가 방대한 것도 문제지만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은 거친 파도에 잘게 부수어진 채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미세플라스틱이란 직경 5mm 이하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다. 매년 800만톤 이상 플라스틱이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바다에 흘러든 비닐봉투, 음료수 페트병이나 버려진 부표, 어망 등은 오랜 시간 마모되면서 미세플라스틱이 되고 중금속 등 유해물질을 흡수한다. 미세플라스틱은 석유로 제조해 ‘친수성’이 아닌 ‘소수성’의 특징을 지닌다. 물과 친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물질에 쉽게 달라 붙는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각종 유해물질까지 흡착된다.
이는 해류를 타고 바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고기의 먹이가 된다. 이 물고기는 최대 포식자인 인간의 밥상에 올라온다. 조개, 물고기, 소금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마시는 생수까지도 미세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인류가 버린 쓰레기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구조다. 자연에 대한 만행은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오는 2050년 해양 쓰레기가 물고기 무게와 맞먹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일부 연구기관은 2025년 연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가 최대 2800만톤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미세플라스틱의 위험, 어느 정도일까. 전 세계환경 전문가들은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전 세계를 뒤덮은 쓰레기로부터 나온 플라스틱이 사람 장기에서도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애리조나주립대학 연구진은 신경퇴행성질병 연구를 위해 기증받은 시신에서 채취한 뒤 조직은행에 저장돼 있던 47개 샘플을 분석했다. 놀랍게도 모든 샘플에서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됐다.
과거 연구진들은 물을 마시거나 배설하는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연구에 따르면 혈관으로 들어가 혈류를 타고 이동할 수 있을만큼 작은 초미세플라스틱은 혈액과 함께 몸 곳곳을 누비다 폐, 신장, 간 등 여과기관에 정체한다.
이는 불임, 성기능장애, 당뇨병 등 다수 건강 문제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폐, 신장, 간 등 주요 기관에 미세플라스틱이 들어가면 석면처럼 주요 발암물질로 작용한다고 알려졌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독일에서는 플라스틱 페트병을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판트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빈병수거기계에 페트병을 넣으면 페트병 1개당 약 340원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이 제도로 독일에서는 페트병 수거율이 약 94%다.
프랑스는 2025년까지 자국에서 플라스틱을 100% 재활용하고 약 800만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에 마이크로비즈와 PVC비닐봉투 사용을 규제하고 플라스틱 소재 일회용품 규제도 확대한다.
미국은 2014년부터 일리노이주를 시작으로 미국 연방법을 통해 규제 법안을 통합하고 마이크로비즈를 규제하고 있다. 이에 마이크로비즈가 첨가된 화장품은 2017년부터 제조가 중단됐다.
캐나다는 화장품과 의약외품, 자연건강제품을 포함한 세면용품에 사용되는 마이크로비즈 제조, 수출, 판매를 금지한다. 특히 기업이 제조하는 세면용품에 마이크로비즈가 들어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중국은 클렌징 등 효과를 위해 미세플라스틱 입자를 첨가한 샴푸, 린스, 손 세정제, 비누, 스크럽, 치약 등의 생산을 중단했다. 2023년도부터는 판매도 금지한다. 또 상점 및 음식배달에 사용되는 분해되지 않는 비닐봉지는 올해부터 직할시 등 주요 도시에서 사용이 금지됐다. 2026년부터는 중국 대부분 지역에서 사용을 금지한다.
우리나라 정부도 올해 해양플라스틱 쓰레기 최소화를 위해 친환경 부표 571만개 보급대책을 내놨다. 해양수산부는 총 398개 제품에 대한 친환경부표 인증과 단가계약을 완료하고 친환경부표 보급 지원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해수부는 2025년까지 친환경부표로의 완전 전환이라는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재정당국과 적극 협의해 나갈 방침이다. 또 올해 안에 양식장 스티로폼 부표 사용을 금지하는 법령을 개정해 단계적으로 친환경부표 사용 의무화를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