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가 시행하는 채식 급식을 두고 비판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오히려 당사자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채식 식단에 우호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8일 ‘2021 SOS! 그린 급식 활성화 기본계획(그린 급식 계획)’을 발표하고 서울 시내 모든 학교에서 한 달 2회 ‘그린 급식의 날’을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채식 식단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시행하는 그린 급식의 날은 학교별로 자율적이며 급식 형태는 육류를 제외하고 해산물·난류·유제품은 제공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식이다. 육식 위주 식습관이 기후 위기 주요 원인인 만큼 육식 섭취를 줄이는 식습관을 실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같은 취지에도 일각에서는 채식 급식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다수 언론이 이를 논란화하고 있다.
이에 비건뉴스가 유력 포털 내 19개 채식 급식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 147개와 MZ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 반응 1000개를 모아 분석했다. 작성자에 의해 삭제된 댓글과 댓글에 달린 대댓글은 제외했다. 본문과 전혀 관련이 없는 댓글도 배제했다.
분석 결과 포털 내 뉴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에 달린 댓글 중 부정적인 반응은 총 85.03%(125건)로 집계됐다. 반면 긍정적인 반응은 11.56%(17건), 중립적인 의견은 3.4%(5건)에 그치면서 부정적인 견해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다.
부정적인 의견의 주요 논거는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균형 잡힌 영양섭취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고루 먹여야 한다는 점이다. 한 달에 2회, 그것도 육류만 제외하고 생선이나 달걀, 유제품은 제공한다는 내용이 본문에 명확하게 고지돼 있지만 영양 불균형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댓글에서 다수 등장한 키워드는 ‘영양 불균형(17회)’ ‘성장기(15회)’ ‘선택(12회)’ ‘강요(11회)’ ‘강제(11회)’ 등이다. 영양 불균형에 대한 우려와 함께 채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특이점은 정치색을 나타내는 의견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앞뒤 문맥을 자르고 무작정 현 정권을 꼬집는 원색적인 비난 댓글이 수차례 등장하기도 했다.
반면 10~20대가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는 과반수가 해당 정책을 지지했다. 해당 게시물에 달린 1000여 건 댓글 중 총 1000개를 분석한 결과 긍정적인 반응이 65.3%(653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립적인 입장은 8.1%(81건), 부정적인 견해는 26.6%(266건)를 차지했다.
해당 커뮤니티는 실제 채식 급식 대상인 10대 고등학생도 이용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반응을 엿볼 수 있었다.
의외로 고작 한 달에 두 끼 고기 안 먹는 걸로 영양 불균형을 논하는 자체가 억지라는 게 중론이다. 또 영양 과잉의 학생들에게 바른 식습관을 들이고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는 좋은 정책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스스로를 학생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우리가 좋다는데 왜 어른들끼리 논란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부정적인 측은 급식이 맛없으면 학생들이 매점으로 몰려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은 균형 잡힌 식사 대신 인스턴트 식품을 섭취하게 되고 잔반은 고스란히 음식물쓰레기가 된다는 주장이다. 또 강제적인 방법의 채식 강요가 반감을 산다는 의견도 나왔다.
중립적인 견해로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학생들이 매점만 찾을 것 같아서 걱정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또 “채식이 환경을 위해 필요하지만 성장기인 학생들보다 (기업·관공서 내) 어른들이 먼저 해야 한다”, “채식도 좋지만 영양소와 아이들 입맛까지 잡아야 하는 영양사들의 노고가 커질 것”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특히 잔반에 대한 우려는 설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채식에 우호적인 입장에서는 기존에도 비빔밥, 스파게티, 생선튀김, 생선까스 등이 메인으로 나오는 날에는 고기가 없었다는 주장을 내놨다. “학창시절 떡볶이, 쫄면, 가락국수, 어묵 등 분식이 나오는 날이면 늘 급식실이 붐볐고 학생들이 남김없이 잘 먹었다”는 댓글도 달렸다.
이에 채식 급식 반대 측에서는 “아무리 맛있는 메뉴를 내놓는다 한들 ‘채식하는 날’이라고 못 박는 순간 학생들이 매점으로 향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여기에는 “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반대하는 걸 보니 ‘채식’이라는 단어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일 뿐”이라는 반박글이 달리면서 양측이 팽팽하게 맞섰다.
커뮤니티 댓글 내 주요 키워드로는 ‘환경(66회)’ ‘생선(64회)’ ‘매점(55회)’ ‘비빔밥(53회)’ ‘영양 불균형(43회)’ ‘강요(43회)’ ‘선택(41회)’ ‘영양사(26회)’ ‘잔반(17회)’ 등이 언급됐다. ‘발작’이라는 키워드도 13차례 등장했다. 해당 키워드는 일부 채식 혐오자들이 ‘채식’이라는 말만 나오면 발작하듯 무조건 반대하고 본다는 의미로 비꼬는 말이다. 이에 다수 누리꾼이 공감하면서 근거 없는 채식 비판적 시각을 꼬집었다.
이처럼 중장년층이 주로 보는 포털 뉴스와 MZ세대가 주축인 커뮤니티에서는 채식 급식에 대한 여론이 사뭇 달랐다. 이는 채식에 대한 이해도 격차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인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온라인상에서 접하는 정보가 많은 MZ세대는 채식과 환경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이는 미래 세대가 기후위기라는 전 세계적인 문제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동시에 이는 채식 급식에 대한 취지 홍보가 부족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또 구체적인 식단이나 영양적 측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성장기 학생들에게 풀떼기만 먹인다는 오해까지 샀다. 우려와 달리 페스코 베지테리언식에서 제공하는 해산물·생선·달걀·유제품 등을 통해 양질의 단백질 섭취가 가능하다. 또 생선에는 두뇌발달에 도움이 되는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는 게 전문가 조언이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정책 시행 전에 채식 급식 취지와 함께 채식의 장점, 유익한 점 등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충분히 전달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앞서 채식 급식을 먼저 시도한 지방 학교들에서 실패한 사례도 많다. 채식 급식에 대한 설명이나 정보제공 없이 무작정 진행하다 보니 강요와 강제라는 부담감이 패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내 S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수민(17세) 양은 "채식이라고 말만 붙였지 원래도 고기 없는 식단은 자주 있었다. 고기가 기후위기 같은 환경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 기회에 잘 알게 됐다"며 "비빔밥이나 떡볶이, 파스타처럼 고기 없이도 맛있는 식단이 구성된다면 친구들도 불만 없이 잘 먹을 것 같다. 맛있게 밥도 먹고 환경보호에도 일조한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도교육청은 2018년부터 주 1회 또는 월 2회 자율적으로 채식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울산시교육청은 지난해 7월부터 월 1회 ‘채식의 날’을 도입해 현재까지 시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