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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

알 낳는 암탉의 가장 행복한 순간 "세상에 나오기 전"

닭은 일생 중 언제 가장 행복할까. 산란계 농장의 환경을 들여다보니 부화 전, 알 속에 있었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알 낳는 기계의 삶은 혹독하게 고통스럽다.

 

자연 상태에서의 닭은 1년에 30개 정도의 알을 낳는데 농장에서는 연간 300개 이상을 생산한다. 이때 칼슘이 다 빠져나가 골다공증에 걸리고 작은 충격에도 쉽게 골절되곤 한다. ‘랭커스터 파밍’ 지에 따르면 암탉이 1년간 낳는 달걀의 껍데기로 가는 칼슘의 양은 암탉 뼈 무게의 30배가 넘는다.

 

 

더 끔찍한 건 사육 환경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당이나 초원을 자유롭게 뛰노는 닭은 상상일 뿐이다. 상당수 산란계가 ‘배터리 케이지’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서 일생을 보낸다. 배터리 케이지는 가장 열악한 사육 환경인 4번에 해당한다. A4용지보다도 작은 0.05제곱미터가 암탉 한 마리에게 주어지는 전체 공간이다. 케이지를 3단, 4단으로 쌓아 놓은 모습이 포열을 의미하는 배터리(battery)와 모습이 닮아 이름이 붙었다.

 

산란계 농장은 환경에 따라 번호를 부여받는다. 1번 사육 환경은 방사형이다. 2번은 축사 내 평지에서 키우는 방식을 말한다. 3번은 0.075제곱미터 면적의 개선된 케이지 사육방식이다. 4번은 상기 언급한 0.05제곱미터의 배터리 케이지다.

 

 

 

이는 소비자도 달걀을 구매하면서 확인할 수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달걀에는 난각번호가 새겨져 있는데, 산란일자 4자리 숫자를 포함해 생산자고유번호(5자리), 사육 환경 번호(1자리) 순으로 구성돼 있다. 사육 환경 번호가 숫자 1에 가까울수록 건강한 환경에서 사는 암탉이 낳은 달걀이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굳이 달걀에 새겨진 난각번호까지 확인해가면서 구매해야 할까. 또 동물복지 달걀을 구매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이는 동물복지의 윤리적 차원을 떠나 먹는 '사람'의 건강이 달린 일이다. 닭의 고통은 결국 인간의 업보다. 실제 2017년 발생한 살충제 달걀 파동의 원인으로도 ‘밀집 사육’이 지목됐다. 닭에게 가한 고통은 결국 사람의 밥상으로 돌아온다.

 

윤리적인 차원에서도 인지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달걀에 어떤 희생이 서렸는지 말이다. 배터리 케이지형 사육 환경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양계업은 살아 있는 생물을 다루는 1차 산업이지만 실제 농장의 운영방식은 효율만이 최우선인 제조업과 다르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처음 사용된 이 사육방식은 적은 비용으로 많은 닭을 키울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날개 한번 퍼덕일 여유도 없는 좁은 공간에 닭들이 다닥다닥 붙어 지내는데, 그 어떤 본능도 충족되지 못한다. 오롯이 알을 낳는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좁은 곳에 갇혀 알 낳기만을 반복하는 암탉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서로를 쪼아댄다. 이런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닭의 부리를 자르기까지 한다. 닭의 부리는 사람 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잘리는 순간부터 평생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불편함에 고통받는다. 

 

케이지 속 닭들은 눈빛에 생기가 없고 깃털이 빠져 살가죽이 드러나며 똥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알 낳기만을 반복한다. 날개 펴기를 비롯해 홰에 오르기, 쪼기, 모래 목욕하기 등 닭이 지닌 본능적인 행동 욕구를 충족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닭은 본래 모래 목욕으로 진드기나 벌레를 떼어내지만 이런 환경에서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살충제 성분 달걀 파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라는 닭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파란(상품으로 부적절한 알) 비율도 높게 나타난다. 닭이 건강해야 알도 신선한 법이다.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케이지 사육 환경이 건강한 달걀을 생산할 리 만무하다. 또 케이지 사육 환경은 조류인플루엔자(AI)와 같은 전염병에도 극도로 취약하다.

 

 

해외에서는 배터리 케이지를 법으로 금지하는 추세다. 배터리 케이지가 닭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유럽 연합은 1990년대부터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신설한 농장은 배터리 케이지 설치를 제한했고 2012년부터 배터리 케이지 시스템 자체를 금지했다. 유럽뿐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캘리포니아 주, 미시간 주, 뉴욕 주 등에도 배터리 케이지의 단계적 폐지를 선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스웨덴 1998년 단계적 폐지 △스위스 1992년부터 금지 △독일 2010년부터 금지 △오스트리아 2009년부터 금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2015년까지 단계적 폐지, 미시건 주 2019년까지 단게적으로 폐지 △캐나다 매니토바 주 2018년까지 단계적 폐지, 앨버타 주 금지, 부탄 2012년부터 금지 △뉴질랜드 2022년까지 단계적 폐지 △호주 수도 특구 2016년까지 단계적 폐지 등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인은 1년에 약 135억개 달걀을 소비하고 있다. 연간 1인 달걀 소비량은 268개로, 유럽연합 국가 230개보다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국내 양계장 95%가 케이지 방식이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양계장이 반세기 전에 도입된 배터리 케이지 방식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실상이 알려지면서 기업들이 ‘케이지 프리’ 캠페인에 합류하고 있다. 풀무원은 2028년까지 모든 자사 제품의 달걀을 동물복지 달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스타벅스도 2029년까지 자사 제품에 사용되는 모든 달걀을 동물복지 달걀로 전환한다. 서브웨이, 메리어트호텔, 포시즌스호텔도 2025년까지 동물복지 달걀 전환을 약속했다. 

 

평생을 좁은 철창에 갇혀 알만 낳다 병들어 죽는 암탉, 이들이 뼈를 갈아 생산한 알을 주로 먹는 한국인,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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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홍

국민을 존중하고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와 진실을 전해주는 정론직필 비건뉴스 발행인입니다.
'취재기자 윤리강령' 실천 선서 및 서명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 '2022년도 제1차 언론인 전문 연수' 이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