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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비건수첩] "넌 친구 넌 고기" 무서운 타자화

“개도 애완견이랑 식용이 따로 있는거야. 보신탕은 괜찮아.”

 

어린 시절 TV에서 개고기 문화에 대한 찬반 토론을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르신들은 식용 개는 따로 있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당시에는 반려견이라는 표현도 없었다)과는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토론 참여자 중 상당수가 전통 식문화로써 개고기를 옹호했다. 집 지키는 충견과 먹어도 되는 식용견은 엄연히 다르다는 게 주된 근거다.

 

 

말 그대로 적극적인 ‘하향의 타자화(무시와 배제를 위한 타자화·동물화)’다. 우리 뇌는 무언가를 마주쳤을 때 판단한다. 나인가, 남인가. 아군인가, 적군인가. 혹은 생명인가, 먹이인가. 오랜 세월 인간의 친구였다는 개도 이런 잣대를 비껴갈 수 없었다. 남으로 치부하는 순간 식량이 된다. 심지어 몸에 좋다는 보양식. 죄책감이나 거부감은 타자화를 통해 철저하게 배제된다. 일종의 정신승리다.

 

이런 식문화를 비난하자고 꺼낸 얘기는 아니다. 논하고 싶은 건 '타자화'다. 20여년 전만 해도 전국 곳곳에 ‘보신탕’, ‘사철탕’ 등 개고기로 만든 보양식 전문점 간판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보다 오래전에는 더 흔한 먹거리였다.

 

 

1980년대 들어서 88올림픽을 앞둔 정부가 대대적으로 보신탕집 정비지침을 내놓고 보신탕 문화로 인한 올림픽 보이콧에 대비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나자 곧바로 보신탕 양성화 여론이 불거졌다. 이후에는 오히려 보신탕을 야만적인 식문화라고 치부하는 단체에 대한 반감이 우세했다. 즉, 개고기를 먹는 쪽보다는 전통 식문화를 공격하는 쪽이 소수이자 열세였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고기를 안 먹겠다는 입장은 동물권 옹호보다는 편식처럼 비춰졌다. 전통 식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골고루 먹는 게 미덕이라는 관성이 쉽게 사라질 리 만무했다. 뭣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다는 이유로 꾸준한 수요가 있었다. 이를 업(業)으로 삼는 쪽에서는 생계가 달린 문제기도 했다.

 

사실 필자도 보신탕의 맛을 모르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 필자가 어린 시절 집안 어른들도 종종 보신탕을 즐겼다. 특히 복날이면 원색으로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이 달린 ‘사철탕’ 식당을 가곤 했는데 조금은 낯선 맛의 고깃국을 먹곤 했다. 어린이 입맛에 별맛이 있겠냐 만은 입에 못 댈 수준도 아니었다. 과자 사 먹기 전에 꼭 먹어야 하는 ‘밥’일 뿐이다. 밥을 먹어야 디저트를 얻어낼 수 있던 어린 시절이다.

 

집요하게 묻지도 않았지만 어른들도 낯선 고깃국의 정체를 굳이 말해주지는 않았다. 하긴 그때 알았다고 한들 식후 확보할 수 있는 달콤한 초콜릿을 포기하면서까지 먹기를 거부했을 것 같지는 않다. 필자는 이미 식용 개와 애완견은 다르다는 타자화를 학습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개고기에 대한 타자화를 거둔 계기는 누렁이의 눈빛이다. 동네 떠돌이 개 누렁이는 평소 사람을 좋아해 반갑다고 달려들곤 했다. 이때는 누렁이가 무서워서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사실 개를 길러본 적이 없어서 어린 강아지를 제외한 모든 성견을 무서워했다. 그중에서도 누렁이는 덩치도 크고 목줄도 없었다. 이 때문에 근방에 누렁이가 있으면 문밖에 나서기를 주저했다. 다만 보호자와 동행할 때는 누렁이에게 간식을 던져주기도 하면서 심적으로는 친하게 지냈다.

 

여느 때처럼 사철탕집 외식을 마치고 가족들과 귀가하던 길, 누렁이와 맞닥뜨렸다. 본래 줄행랑을 치던 쪽은 필자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반갑다며 다가오던 누렁이가 겁에 질린 눈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내 몸을 돌려 도망을 치더니 몇 번이나 겁먹은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내달렸다.

 

누렁이는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쳤을까. 미성숙한 뇌로도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했다. 누렁이는 발달한 후각으로 동족을 잡아먹은 천적을 알아채고 살기 위해 뛰었다. 평소 좋아했던 친구의 천적이 되자 마음이 불편했다. 이후에 누렁이와의 관계가 회복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뒤로 필자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 공포어린 눈빛도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까지 ‘개’ 한정이다. 소, 돼지, 닭, 오리, 생선 등 개 말고도 먹을 고기는 넘쳐났다. 모순되게도 ‘소처럼 일한다’는 말처럼 충직하게 인간의 일손을 도왔던 소에게는 누렁이 눈빛이 통하지 않았다. 지능이 뛰어나 반려동물 삼을 수 있다는 돼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밥상에 오른 개고기 아닌 모든 고기는 철저한 타자였다.

 

 

 

우리는 언제부터 고기와 친구를 나누는 걸까. 일부 어린 아이들은 종종 동화책으로 알게 된 동물 ‘친구’ 먹기를 거부한다. 흔히 밥상에 오르는 소·돼지·닭고기 외에 생선이나 갑각류도 물고기 친구, 꽃게 친구라면서 잡아먹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긴다.

 

귀여운 순수함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타자화를 학습한다. 이를 거두려면 상당히 충격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비교적 쉽다. 필자처럼 겁먹은 누렁이를 만나지 않더라도 동화 속 이야기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물이 아닌 그림, 이야기,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동한다.

 

성인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개와는 교감할 수 있다. 이제는 대다수가 식용견과 반려견을 구분 짓지 않는다. 하지만 접하기 어려운 동물은 여전히 타자고 식량이다. 이는 주류의 주장처럼 자연의 섭리이자 약육강식의 법칙일 수 있다. 문제는 해도 너무하다는 데 있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동물이 그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대량생산 공장에서 태어나 살을 찌우고 도륙당하고 있다. 필자는 이들의 불쌍한 처지를 아무리 목놓아 외쳐봐야 타자화를 중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필자도 개고기 식문화를 받아들였던 타자화 꿈나무였다. 이는 절대적으로 충격적인 교감이 있기 전에는 되돌릴 수 없는 관성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떡하자는 말인가. 방법을 바꿔야 한다. 동물의 입장이 아닌 인간의 상황을 호소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채식주의자가 외치는 육식의 폐해는 그저 동물이 불쌍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인류를 위해 육식을 줄일 필요가 있다. 윤리적인 부분을 걷어내고라도 공장식 축산을 반대해야 할 이유는 있다. 이를 강조해야 한다.

 

고기에 대한 문제 제기는 크게 △종교 △윤리 △건강 △환경의 네 가지로 갈린다. 여기서 종교와 윤리적인 이유를 걷어내고 의견이 분분한 건강측면을 차치하고서라도 환경이라는 대전제가 남는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지난 2015년 가디언지에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전 세계적인 과도한 육식에 대해 경고했다. 글에 따르면 오늘날 인간이 먹기 위해 사육하는 가축은 지구상 모든 대형동물의 90%를 차지한다. 인간을 위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가축은 생종 경쟁에서는 수적으로 ‘성공’했으나 생애 전 주기에 걸쳐 끔찍한 나날을 맞이한다. 이는 심각한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을 통해 인간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공장식 축산은 21세기 최대 위기로 손꼽히는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채택한 특별보고서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려면 육식 위주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천연자원보호협회(NRDC)가 발표한 ‘10가지 기후파괴 식품’ 중 동물성 식품(소고기, 양고기, 버터, 치즈, 돼지고기, 닭고기 등)은 무려 9관왕을 차지했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15%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합친 것 보다 높은 수치다. 가축이 트림과 배설물 등을 통해 내뿜는 메탄가스와 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각각 23배, 300배 더 강력한 온실효과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가축을 기르고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대규모 산림이 파괴된다. 그중에서도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브라질 아마존이 최전선에 있다. 파괴된 아마존 산림의 약 70%가 소를 기르는 목장(cattle ranching)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수자원 고갈은 또 다른 문제다. 토마토 1kg을 생산하는데 214리터 물이 들어간다. 그러나 같은 양의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1만55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토마토의 72배다. 참고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물을 많이 사용하는 한국의 1인당 일일 물 사용량은 287리터(2016년 기준)다. 

 

 

아울러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가축분뇨는 5101만 톤으로 이는 60kg 성인 약 8억명 체중을 합한 것보다도 많은 양이다. 축산농가수는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지만 공장식 축산이 확대되면서 사육 동물 수와 그 분뇨도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급속도로 규모를 불리는 농장에 비해 처리시설 확충은 미흡한 실정이라 매년 민원이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인근지역 주민들은 부적절하게 처리된 분뇨로 수자원 오염, 악취 등의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결국 공장식 축산의 과실을 맛보는 것도, 그 부작용을 감당해야하는 것도 인간이다.

 

물론 “채식만 옳고 육식은 틀리다”는 이분법적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70억 이상 인구가 지금까지 고기에서 얻어왔던 열량이나 단백질만큼의 영양소를 모두 곡식과 채소, 열매로만 얻어야 한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환경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들은 고기 섭취를 줄이는 것이 환경에 이롭고 식재료의 효율적인 재분배를 유도한다고 반론한다. 근거를 살펴보면 전 세계 곡물량의 45%는 이미 가축이 먹고 있다. 인류 경작지의 80%를 축산업에 사용하는 것도 참고해야 한다. 즉, 어떤 상황이든 지금의 ‘해도 너무 한’ 육식보다는 낫다는 게 결론이다.

 

육식을 그만두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어떤 핑계를 대든 지금이 ‘과도한 육식시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필자는 강요하는 채식주의자가 아닌, 인식하는 채식지향인을 목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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