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 대명절 추석에는 온 가족이 모여 덕담을 나누고 잘 차린 음식을 나눠 먹는다. 예부터 추석은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오곡을 수확해 지내는 명절인 만큼 차례상이 풍성했다.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하는 상차림에도 갖가지 맛좋은 음식이 가득하다. 문제는 채식주의자들에게 명절 가족 식사는 곤욕이라는 점이다.
채식주의 2년차 김모(30·여)씨는 “추석 가족 모임을 앞두고 걱정이 크다”며 “어른들에게 채식주의라는 사실을 알리면 괜한 걱정을 끼칠 것 같고 채소만 골라 먹자니 편식으로 비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추석 상차림에는 다양한 나물류도 올라가지만 부침개와 전, 튀김, 고기산적, 갈비 등 육류가 주를 이룬다. 특히 동그랑땡, 고추전, 꼬치전 등 각종 전에는 다짐육이나 햄 등이 포함돼 있다. 또 달걀물을 묻혀 기름에 부쳐내기 때문에 비건이라면 섭취가 제한되는 음식이다.
비건은 단순히 육류를 제외한 채소만 먹는다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동물을 착취하거나 희생시켜 생산한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거부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 소신이자 신념이다.
하지만 국내 채식인이 일상에서 본인의 신념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타인의 시선과 비판적인 시각도 감내해야 한다. 주로 듣는 말은 “유별나다”는 힐난이다. 여기에는 종종 지인이나 가족도 포함된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명절에 나물반찬도 많은데 뭐가 문제냐” “직접 비건요리를 해서 먹어라” “소신이 뚜렷한 사람들이 명절 밥상머리 탓하나” 등 부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물론 틀린 얘기도 아니다. 주관이 뚜렷하다면 신념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구책은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환경이나 주변 여건만 탓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논지는 애초에 채식주의자를 바라보는 악의적인 시선과 혐오다.
이는 아직 유럽, 미국 등 채식 인구가 많은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는 비건에 대한 인식이 자리를 잡지 못한 탓이다. ‘소수’를 바라보는 비교적 협소한 시각도 몫을 보탠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감이 덜한 해외에서는 보다 열린 시각으로 채식주의를 바라봐 왔다.
현재 전 세계 채식 인구는 1억8000만명을 넘어섰다. 그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식단을 따르는 비건 인구가 5400만명으로 한국 총 인구수를 상회한다. 국내 비건 인구는 약 50만명으로 전세계 비건 인구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채식주의자를 보는 시각이 생소할 수밖에 없다. 생소함은 유별나다는 부정적인 반응으로 변환되고 비건들을 비난을 피해 자꾸만 숨는 구조다. 이는 채식에 대한 오해를 키우고 신념을 지키는 데서 오는 긍지를 반감하는 악순환이다.
또 일부 채식인들이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는 언사도 문제다. 전통적인 채식주의 이념에 따르면 모든 환경·동물권·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여기에는 타인의 식습관도 당연히 포함된다. 모든 식습관과 신념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채식주의자 이모(44)씨는 “채식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문제지만 육식을 한다고 해서 비난하는 일부 채식인도 문제가 있다”며 “모든 채식인이 타인에게도 채식을 강요하거나 억지로 권유·전파하는 게 아니다. 오해를 바로잡고 상호 존중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