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 얼마나 개선됐을까. 엄격한 채식을 실천하는 국내 비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최근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책의 일환으로 채식이 대두되면서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다. 일찍이 채식이 확산된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는 채식이 일상화되면서 채식인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일상에서도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데 큰 장애물은 없다. 대다수 음식점은 비건을 위한 메뉴를 마련해놓고 선택지를 제공한다. 채식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대수롭지 않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 채식 인구가 150만명을 돌파했고 서울시내 948곳 채식 식당이 들어서 있다. 식품·패션·뷰티 등 산업분야에서도 비건 관련 상품을 속속 출시하면서 ‘비거노믹스(veganomics·채식주의자를 칭하는 비건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믹스를 합친 신조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채식주의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 채식인이 일상생활에서 신념을 배격당하는 일이 잦다고 토로한다.

2년간 비건을 실천한 김수현(여·33) 씨는 “식당에서 가끔 고기를 빼달라고 요청해야 할 때가 있다. 한 번은 채식주의자라고 밝혔더니 고기 파는 집에서 그런 소리 말라고 하더라”며 “그 뒤로는 그냥 한약을 먹고 있다고 설명한다”고 했다.
한국채식연합 회원 A씨는 “김밥집에서 햄과 달걀을 빼달라고 했더니 안 팔겠다면서 나가라고 하더라”며 “손에 익은 매뉴얼과 다른 요구 자체를 귀찮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원래 넣는 재료가 빠지면 더 이익일 텐데도 상당수 음식점에서 거절을 당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이어 “콩나물국밥집에 가서 아무 맛도 안 나도 되니 맹물에 소금 넣고 끓여 달라고 부탁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다”며 “아직은 국내 비건 인식 개선을 위해 갈 길이 먼 것 같다. 마음을 열고 기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식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한국채식연합 회원 B씨는 “채식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런 실천이 나 혼자만을 위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며 “당신과 당신 가족,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지구를 위한 행동이라고 반드시 밝히는 편이다”고 했다.
채식 식단을 유지하는 데 겪는 어려움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6개월 정도 비건을 실천하다 포기하고 다시 도전 중이라는 이미연(가명) 씨는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과 매일 겪는 식단 고민이 포기의 원인이었다”면서 “세상이 고기 먹는 걸 ‘디폴트값’(초기에 정한 설정)으로 여기다 보니 고기를 먹지 않는 행동은 비정상적인 취급을 받는다. 왜 먹냐고 반문하면 ‘맛있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이어 “고기 먹는 이유는 단순히 맛있어서인데 왜 안 먹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3개월차 비건인 심연수(34·여) 씨는 “비건 입문자로서 채식주의를 밝힐 때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논비건과 이런 대화를 나눌 때 ‘식물도 생명이다’, ‘편식하면 건강에 나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면서 “이럴 때는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물론 채식인에 대한 대접이 천편일률적으로 야멸찬 것은 아니다. 실제 채식인구가 급증하고 비건에 대한 미디어 노출이 많아지면서 인식과 처우가 개선되고 있다는 데 상당수가 동의한다.

한국채식연합 회원 C씨는 “집 근처 한식집에서 된장찌개에 된장과 물만 넣고 끓여달라고 주문하면 열에 아홉은 들어주신다”며 “냉면전문점에 일행들과 갈 일이 있어 내 몫은 사리만 따로 주문해 양배추김치에 버무려 먹은 적이 있다. 어느 날은 한 친절한 직원분이 동치미 국물에 말아 드시라면서 따로 편의를 봐준 적도 있다”고 미담을 전했다.